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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6월 25일, <미디어 피폭지>에서 띄우는 마지막 리포트



남한강 따라 서울로 이어진 강변 길은 걷기에 그만일 것이라 생각했다.


끊김 없는 자전거 길에 보행로까지 잘 갖춰져 있어 우선 안전 걱정이 사라졌다.


강변 공원도 웬만은 할 테니 초록과 그늘의 혜택을 보리라 여겼다. 


4대강 사업의 재앙을 알리기 위해 걷는 길에서

4대강 사업의 혜택이라니 웃긴 일이었다.


하지만 애초부터 웃긴 생각이었다.



우리는 안전했으되 길은 결코 안전하지 않았다.


사람이 없는 길이었다.


자건거 타는 사람도 휴일에만 반짝 몰리는지라

하루 종일 걸으며 마주친 이가 수십 명에 불과했다.


사람은 없는, 길을 위한 길.


이렇게 텅 빈 사진은 수도 없이 찍을 수 있었다.



더운 날 혼자 이 주변을 산책하다 쓰러지기라도 하면 어떻게 되는 거지?


사이코패스에게 해코지라도 당하면?


길가 벤치는 숨은 그림 찾기 놀이를 하라고 만들어 둔 것 같았지만

지나는 사람이 없으니 그런 놀이 할 일도 없었다.



급조된 초록은 엉성하고 앙상했다.


이 나무들은 어느 세월에 그늘을 드리울까?



걷는 내내 몸만 힘든 것이 아니라 머리가 지끈 거렸다.


눈에 보이는 것들이 죄다 골치거리였다.


강변과 보 주변에 공원 만든다고 얼마나 많은 세금을 쏟아 부었을까?


이 정도로 천지개벽을 시켰는데 

대체 무슨 혜택이 이 강에, 이 땅에, 여기 사람들에게 돌아갔을까?


토건세력 주머니를 채우려 이 짓을 했다고 생각하니 걷는 길이 몇 배나 힘들었다.



보들은 왜 또 그 모양들인지…


강천보 주변은 들뜨고 부숴진 콘크리트가 날림 공사를 고백하고 있었다.



여주보는 떠내려온 나무 토막 하나도 넘겨 보내지 못하는 지경이었다.


보 상류는 거대한 호수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부유 쓰레기조차 넘기지 못하는 보는 냉장고까지 붙들고 있었다.  



백미는 명품보로 칭송되고 MB가 족적을 남겼던 이포보였다.


이포보 아래 보 대신 계단식 구조물이 있고 그 아래 둥근 물막이가 있는데

물놀이를 하라고 만든 것이란다.



계단을 타고 흐르는 강물은 과연 물놀이 할만큼 깨끗할까?


보 위 다리에서 찍은 사진이 답이다.



여주보에서 본 것처럼 부유 쓰레기들이 가까운 보에 걸쳐져 있었고

사진 왼쪽으로 보이는 물놀이 시설 바로 위의 강물은

반대편과 물 색이 뚜렷이 구별될 만큼 더러웠다.


MB는 사랑하는 손녀와 이곳에서 물놀이를 즐길 의향이 있을까?


길이 참 멀다.



*마지막 사진 : 하성준 YTN노조 사무국장



(3주에 걸친 공정방송 국토순례, 이제 막바지입니다.

<미디어 피폭지>에서 띄우는 리포트는 이것으로 마칩니다.

모두 열두편의 리포트에 담은 생각 잘 여물도록 남은 길도 열심히 걷겠습니다.) 


by 노PD | 2013/06/26 00:00 | 생각의 조각 | 트랙백(10) | 덧글(1)

2013년 6월 23일, <미디어 피폭지>에서 띄우는 열한번째 리포트


(글의 재미를 살리기 위해 사진을 매개로 살짝 가공한 내용을 일부 포함시켰지만
4대강 문제와 관련해서는 사실에 기반하고 있음을 밝힙니다. ^ㄴ^)


노돌발 선생과 떠나는 4대강 탐방.

황강이 낙동강과 만나는 청덕교 아래에서
뉴스타파 제작진을 비롯한 몇몇 언론인들이 합류했다.


탐방단 일행은 노선생을 따라 합천보 쪽으로 향했다.

첫번째 탐방지는 재퇴적 현장.

수심을 6미터로 고르게 준설했지만 어느새 모래가 다시 쌓여 예전의 모래톱이 복원된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노선생은 매우 중요한 곳이니 발맞추어 가자 했고
모두가 따라주어 노선생은 몹시 흡족했다. 



잠시 뒤 노선생은 일행 맨 뒤에 이상한 차림의 사내가 따라오는 것을 발견했다.

이곳을 사하라 사막쯤으로 잘못 알고 온 리비아 사람이 아닐까 걱정했지만
다행히 잘 아는 사람, 언론노조 위원장이었다.



노선생은 눈에 보이는 모래톱 말고 강 속에도 모래가 잔뜩 쌓여 있다는 사실을 폭로했다.

그러나 사람들은 말을 곧이 듣지 않았다.


 노선생은 궁리 끝에 신을 벗었다.


그리고 주저 없이 강으로 걸어 들어갔다.


바로 그때,
일행 중 한 명이 노선생을 따라 들어가는 것이 아닌가.


노선생이 자살이라도 하는 줄 알았을까?

노선생은 
수심이 6미터는커녕 60센티미터도 안된다는 사실을 
행동으로 보여주려 한 자신의 의도를 오해한 멍청한 작자라고 여겼다.

그리고 모래톱 위의 일행을 향해 소리쳤다.

"이 사람 좀 끌어내요."


그는 한동안 고개를 숙이고 있다가 억울하다는 듯 입을 열었다.

"그 옛날 강변 모래톱에서 놀던 때가 생각나 나도 모르게 선생님을 따라 들어온 겁니다.
지금이 아니면 또 언제 강물 아래 모래를 밟아 보겠습니까?"


노선생은 모래톱으로 나와 자신이 오해했음을 설명하고 함께 사진을 찍자고 했다.



노선생은 이제 댐이나 다름 없는 보를 보러 가자고 했다.


어디든 낙오자는 있는 법.


휴대폰에 빠져 있다 일행을 놓친 이가 있었으니 그는 YTN 해직기자 정유신이었다.


그는 발바닥에 땀나게 뛰어 겨우 일행 후미에 붙었다.



다시 대오를 갖춘 노선생 일행이 도착한 곳은 합천보.

일행은 물이 쏟아져 흐르고 있는 수문 아래 수심이 어느 정도인지 무척 궁금했다.
  

노선생은 원래 수심이 몇미터에 불과하던 곳이지만
보가 들어선 이후 세굴 현상으로 수심 수십미터의 거대한 웅덩이가 생겼을 것이라고 말했다.

기초가 패여 모래가 드러나면 보는 그야말로 사상누보가 된다고 했다.



노선생은 합천보 측면에 만들어진 수력발전소 곳곳에서 물이 새고
땜질한 흔적이 보이는 것을 가리키며
저것이 1년 넘도록 반복되는 현상임을 우려했고
장마 때문에 잠깐 숨어버린 녹조도 용케 찾아내 보여줬다.



생태 하천 흉내 낸다고 만든 습지가 얼마나 처참히 망가져 있는 지도 생생히 확인할 수 있었다.


이것이 끝이 아니었다.


노선생은 마지막 탐방지라며 우리를 근처 수박밭으로 데려갔다.

4대강 사업으로 수박 농사를 망쳤다는 게 이유였는데
일행은 노선생 말을 도무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일행의 궁금증을 말끔히 씻어준 이가 있었으니 농사꾼 곽상수였다.

그는 밭일 하던 차림새 그대로 사투리 구수하게 청중을 휘어잡았다.


4대강 사업으로 보가 생기고 그 보가 강물을 가두면서 수면이 올라갔고
덩달아 수박 밭의 지하수 수위도 높아졌다고 설명했다.

그래서 뭐 어쨌다는 거냐 했더니
수박은 뿌리를 깊게 박기 때문에 땅밑 얕은 곳에 물이 있으면
잎이 마르면서 죽거나 크기가 작아져 상품가치가 떨어진다고 했다.



한마디로, 이따시 만하던 수박이...


요따시 만해진다는 말이었다.


비닐하우스 한동에 5백만원 받던 수박값을 백만원도 받기 힘들어져
빚은 늘고 수박 농사를 포기하는 농민이 급증하고 있다 했다.

수박값 더 떨어질까봐 피해 사실을 농민 스스로 말하기 어려운 갑갑함도 토로했다.


정부는 뭐하고 언론은 뭐하는 지, 듣는 노선생 일행도 갑갑했다.


그런데 한 사람은 별로 갑갑하지 않은 표정이었다.

휴대폰에 빠져 뒤쳐졌다 겨우 따라붙었던 그 해직기자.

실상을 듣고도 이럴 리는 없는데, 속 편한 언론들처럼 왜 이럴까?

늦어서 못 들었나? 휴대폰 하느라 못 들었나?

(정유신 기자, 실제로는 누구보다 열심히 듣고 열심히 기록했습니다. ^ㄴ^)  

*사진 : 이기범 언론노조 교육선전실장 겸 언론노보 기자


by 노PD | 2013/06/24 00:40 | 생각의 조각 | 트랙백 | 덧글(1)

2013년 6월 22일, <미디어 피폭지>에서 띄우는 열번째 리포트



의령을 지나 한참을 걸었더니 

이정표보다 송전탑 반대 스티커가 밀양에 들어섰음을 알렸다.



밀양 남천교를 오작교 삼아 조합원들과 만났다.


서울에서 기차를 타고 20여명이 달려왔다.


고마운 일이다.


동행 취재 기자들을 포함한 수십명 대오가 남천강을 끼고 함께 걸었다.



고추와 깻잎의 고장 밀양이 어쩌다 송전탑의 도시가 되었나?


지난해 1월 이치우 할아버지의 분신,

한달 전 한전이 공사를 강행하면서 일어난 충돌.


마음이 무겁고 경계심이 강하겠거니 예상했지만 

밀양역 광장 촛불문화제에 모인 어르신들은 당당했고

낯선 이들에게도 넉넉했다.



보상금이나 올리려는 셈 빠른 노인네들로 치부될까봐 

국회의 보상법안 처리까지 보류시킨 할매, 할배들이었다.



"우리는 보상 필요 읎다. 목숨을 걸고 하는 싸움인기라."


아무리 한전이 큰 기업이라도, 아무리 정부가 한전 편을 들어도

밀양에 송전탑이 들어서기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시 사람들 고추 꼬부라지면 안 먹고

깻잎 조금만 벌레 먹어도 안 먹지요?

그러면서 우리보고는 송전탑 좀 있으면 어떠냐

전자파 좀 있으면 어떠냐고 합니다.

서울 도심에 전봇대 있던가요?

대구 동성로에도 미관상 보기 싫다고 전봇대 하나 없는데

우리보고는 765kv짜리 초고압 송전탑 머리에 이고 살라고 합니다."


웃음과 흥이 가득했던 촛불문화제, 그러나 그 바탕은 한이었다.



*사진 : 이기범 언론노조 교육선전실장 겸 언론노보 기자


by 노PD | 2013/06/23 01:10 | 생각의 조각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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